낙동강전선까지 압박.
7월 말 낙동강을 도하한 북한은 대구와 부산을 잇는 남한군의 대동맥을 끊으려고 압박.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은 낙동강과 산악지대를 잇는 천연장애물을 이용한 8월 4일 새벽1시 최후의 방어선 구축-이 방어선을 ‘워커라인=부산교두보’라 부름.(낙동강-미군, 산악지대-남한
방어선이 된 바 있다. 한편 김해산각주 말단부에 있는 을숙도 일대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철새도래지이다.
Ⅱ. 낙동강의 유래
낙동강은 영남지방 전역을 유역권으로 하여 그 중앙 저지대를 남류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유로연장 521.5㎞, 유역면적 23,817㎢으로 압록강 다음가는 한국 제2의 강
미국은 중국에서 지원하던 장개석의 패배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자 자본주의 진영의 절대적 힘의 우위구도가 깨지고 2차 대전을 통해 최강의 정치, 경제, 군사적 지위가 흔들리게 되엇다. 미국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서유럽 국가들과 집단안전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극동에서 일본의 군국주의적
1.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그저 지난날의 있었던 일들을 안다는 것이 아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저명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역사를 통해 우리의 삶을 조명하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를 단순히 책
빗물이 낙동강으로 모이면 영남, 영산강으로 모이면 호남. 한강과 금강으로 모이면 각각 경기도와 충청도가 되는 것이다
1) 기간 : 1950.9.16~ 9.30
2) 의의 :
i) 신속한 추격 및 전과확대로 전쟁의 주도권 장악
ii) 북한군 6개 사단 이상의 적이 남한 내에 고립 -> 포로 23,000이상
⑤ 경천대 국민 관광지
경천대는 낙동강을 굽어보는 절벽에 세워진 건물이다. 병자호란 후인 1628년(인조 6) 봉림대군이 중국에 볼모로 갈 때 주치의로 따라갔던 채득기(蔡得沂)가 터를 닦았다고 한다. 기암절벽과 강물, 소나무 숲이 절경을 이루는 곳으로 본래는 하늘이 스스로 만든 경치라고 해서 자천
대구 구미 등 낙동강 중상류 유역에 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돼 현재 1천2백여만평에 이르는 18개 공단이 조성돼있고 5백여만평의 13개 공단이 조성중이며, 8백여만평의 10개 공단이 계획중이다. 이 가운데 위천공단 조성문제는 90년대 이후 줄곧 제기돼 왔으며 이로 인해 대구 경북지역과 부산 경남지역간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의 계기를 조성해 주었다. 또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해 인천의 항만시설과 서울에 이르는 제반 병참시설을 북진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인천상륙작전에 이은 서울 수도탈환의 성공은 심리적으로 국군 및 유엔군의 사기를 크게 제고시키고 북한군의
I. 서론
영천은 대구 동쪽 34㎞ 지점에 위치한 요충지로서, 만일 영천이 돌파되면 영천으로부터 대구 또는 경주로의 돌파구가 형성되어 한·미연합군의 낙동강방어선이 큰 위협을 받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공산군은 제15사단을 주축으로 한 5개 연대병력을 투입하여 1950년 9월 5일
영천의 지리적 이점
: 대구에서 34Km, 경주에서 28Km 거리에 위치하는 교통의 요지
작전 지역의 북쪽은 험준한 산악지형, 남쪽으로는 전차부대 운용에 유리한 지역
중앙선과 대구선 철도가 연결되는 도로와 철도교통의 중심이 되는 요충지이며
낙동강방어선 전체로 볼 때 국군이 담당하고 있는